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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상식

한지붕 세가족의 시작 기정 정세권의 북촌 개발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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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세가족은 정세권이 만들었다.

 

한지붕세가족이란 얘기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옛날에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지붕세가족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긴 걸까?

그리고 그런 주거형태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떻게 생긴 걸까?

 

조선시대 때만 해도 집의 구조는 직사각형 형태였다.

안방, 사랑방, 건넌방 등이 존재하여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직사각형의 집 구조가 정사각형으로 바뀌었을까?

 

192~30년도에 우리나라 각지에서 토지를 일본에게 뺏긴 농민들이 한성의 공장에 취직을 하기 위해 대거 이동하였다.

당시 한성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만한 집이 없었다.

 

집이 없는 농민들은 천막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정세권이라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현재 인사동인 북촌에 대규모 필지를 쪼개서 한옥 주택단지를 개발하였다.

직사각형의 집 구조를 정사각형으로 만들면서 안방에는 집주인이 건넌방에는 세입자가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한지붕세가족이나 아들과 딸 등에 나오는 집 구조가 정세권의 개발로 인해 정사각형에 세입자가 들어있는 그런 구조로 나오는 것이다.

 

직사각형의 넓은 구조보다 훨씬 효율이 좋아 여러 세대가 한 집에 거주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것을 우리나라의 최초 개발사업이라고 보는 평가가 많이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는 정세권과 북촌을 연구하며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조선인들을 위한 주택을 조선인이 직접 개발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우리가 보는 삼청동의 모습은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대량의 적산 주택단지가 되었을 것이다.'

 

정세권은 또한 청계천 북쪽을 개발하였고 큰돈을 벌여들였다.

하지만 그 돈을 애국 단체에 모두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고문을 받아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 돈과 땅마저 다 뺏겨버렸다고 한다.

 

북촌을 한번 방문해 애국자이자 디벨로퍼인 그의 정취와 애국심을 느껴보아야겠다.